앞으로의 대학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시대를 리드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 교수자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탐구하고 동료와의
진지한 토론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체득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대부분의 과목에서 시험을 없애는 대신, 발표와 토론, 워크숍, 글쓰기, 프로젝트를 교수법으로 사용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기존의 지식 체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찾아내는 불편함을
하나씩 해소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독자적 관점을 개발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학부 수업(고경디)에 들어가서 또 한바탕 꼰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떠들어 대는데 학생들은 얼마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지 가늠하기 쉽지는 않다. 이상하게 요즘 아이들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좀 더 I형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쉽게 말해 반응이 별로 없다. 발표 시키면 말도 청산유수처럼 잘 하는데, 내가 시키면 잘 안 한다. 학생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투명 유리벽 같은 것이 있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어찌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미 난 그들의 부모 세대만큼 나이를 먹었으니까.
요즘 내가 첫 시간에 들어가서 강조하는 말은 '사고의 자유로움'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근원적으로 느끼고 싶은 니즈다. 자율성, 자유, 선택, 자유의지 등 다양한 단어로 불리지만 결국 근본은 동일하다. 대학에서 뭔가를 배우면서 사고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너무 지식 흡수로 학생들을 옥죈다. 기존의 지식 체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하는데 집중한다. 세상에 정답이 어디 있나? 교과서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흘러간 옛 지식일 뿐이다. 모든 학문은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그러니 세상을 바꿀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게 선생의 역할이다.
혹자는 기존의 지식 체계를 잘 흡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새로움도 나온다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창의성이란 기존 지식 파편들이 어느 순간 스파크처럼 전기를 일으킬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머리에 든 정보가 없다는 것은 스파크를 일으킬 재료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기존의 것, 즉 교과서나 선생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그것도 (작은) 폭력이다. 동일한 지식도 그들의 관점과 문제 의식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되어 수용되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이 어딘가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생각할 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을 경험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기본적인 지식을 함양하는 것을 전제로, 그들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의 단서를 찾고, 동료들과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여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자유로움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실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강의실에서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사고의 자유로움을 경험하게끔 강의를 디자인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저 나는 옆에서 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가끔 당이 떨어져 힘들어할 때 작은 간식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여유만 있으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