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24년)는 정부의 R&D 비용삭감으로 연구재단의 연구비 경쟁이 치열했다고들 한다. 나의 경우 3개의 과제가 모두 탈락하는 좌절을 맛봤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절대적 금액이 줄어들어서인지 아니면 제안서의 매력도가 떨어져서인지 쉽지 않았던 같다. '아,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고 난감하던 차에, 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교내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정 후, 원래 금액보다 지원액이 상향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다. 연구비를 사용하는 항목마다 영수증을 제출해야 함은 물론이고, 나의 경우 전공특성상 거의 모든 연구비를 사용하는 온라인 실험/서베이의 raw data까지 제출하란다. 그래,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런데, 또 다시, 법인카드 사용의 경우 일일이 물품구입 지급 확인서라는 것을 제출하라고 한다. 설문조사 데이터가 물품인지도 애매할 뿐더러, 데이터와 인보이스/영수증까지 제출한 마당에 물품구입 지급 확인서라니? 이게 도대체 언제적 연구행정인가? 요즘 내 분야의 글로벌 톱 저널에 논문 한 편을 게재하려면 실험/서베이를 수십 번 돌려야 하고, 비용도 수천만에 달한다. 단돈 몇 십만원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면서 좋은 논문을 쓰라고?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다.
물론 지급확인서 작성은 경영대학 담당직원 선생님의 배려로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었지만, 연구행정은 그야말로 구닥다리, 전근대적 산물, 관료제적 폐쇄성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이러면서 연구 생산성이니, 자율성이니, 이런 것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물며 서울대학교가 이 정도인데 다른 대학들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그저 좀 더 사정이 좋으니 현실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제자가 유학 간 네덜란드의 Erasmus 대학에서는 대학원생들이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하도록 연구비와 학회참가비를 제공한다. 다른 제자가 job market에서 오퍼를 받은 홍콩의 주요 대학 중 하나에서는 연구비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로 넉넉하다고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 재학 시 받은 연구비에 대해서는 일절 꼬리표가 붙지 않고 연구비도 내가 필요한 곳에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던 대로 하지, 뭐 다르게 해야 하나?'며 관행에 얽매이는 융통성 없는 조직, 자신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구성원,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리더십의 변화가 없다면 창의적 연구는 고사하고, 성숙한 사회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 제자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는 Teaching School이나 심지어 포스트닥터로 남을지언정, 절대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한다.
내가 재직하는 서울대학교는 한참 전에 법인화를 했지만, 시행 다시 명분이었던 자율성은 도로 후퇴하는 것 같다. 예산의 자율성이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사회는 정부관료들이 장악하고 있고, 단과대학이나 교수들의 영리사업도 그리 개방적이지 않다. 단과대학에서 연구/교육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연구에 재투자되지 못하고 간접비라는 명목으로 본부에 들어간다. 물론 그 돈이 캠퍼스 전체를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세상밖으로 나아가 창의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도록 자율성을 제고하기위해 시행한 법인화 아닌가?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못 나가게 바지가랑이 붙들어 모두를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부끄럽지만 바꿔야 하는데, 책임/권한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답이 없다. 나 같은 일개 평교수가 아무리 열받고 떠들어대 봐야 무슨 소용일지 모르겠지만, ...
생각(그리고 그로 인해 제도와 문화)이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자율성 없는 조직은 희망도 없다.
올해(2024년)는 정부의 R&D 비용삭감으로 연구재단의 연구비 경쟁이 치열했다고들 한다. 나의 경우 3개의 과제가 모두 탈락하는 좌절을 맛봤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절대적 금액이 줄어들어서인지 아니면 제안서의 매력도가 떨어져서인지 쉽지 않았던 같다. '아,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고 난감하던 차에, 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교내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정 후, 원래 금액보다 지원액이 상향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다. 연구비를 사용하는 항목마다 영수증을 제출해야 함은 물론이고, 나의 경우 전공특성상 거의 모든 연구비를 사용하는 온라인 실험/서베이의 raw data까지 제출하란다. 그래,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하다. 그런데, 또 다시, 법인카드 사용의 경우 일일이 물품구입 지급 확인서라는 것을 제출하라고 한다. 설문조사 데이터가 물품인지도 애매할 뿐더러, 데이터와 인보이스/영수증까지 제출한 마당에 물품구입 지급 확인서라니? 이게 도대체 언제적 연구행정인가? 요즘 내 분야의 글로벌 톱 저널에 논문 한 편을 게재하려면 실험/서베이를 수십 번 돌려야 하고, 비용도 수천만에 달한다. 단돈 몇 십만원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면서 좋은 논문을 쓰라고?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다.
물론 지급확인서 작성은 경영대학 담당직원 선생님의 배려로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었지만, 연구행정은 그야말로 구닥다리, 전근대적 산물, 관료제적 폐쇄성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이러면서 연구 생산성이니, 자율성이니, 이런 것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물며 서울대학교가 이 정도인데 다른 대학들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그저 좀 더 사정이 좋으니 현실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제자가 유학 간 네덜란드의 Erasmus 대학에서는 대학원생들이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하도록 연구비와 학회참가비를 제공한다. 다른 제자가 job market에서 오퍼를 받은 홍콩의 주요 대학 중 하나에서는 연구비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로 넉넉하다고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 재학 시 받은 연구비에 대해서는 일절 꼬리표가 붙지 않고 연구비도 내가 필요한 곳에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던 대로 하지, 뭐 다르게 해야 하나?'며 관행에 얽매이는 융통성 없는 조직, 자신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구성원,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리더십의 변화가 없다면 창의적 연구는 고사하고, 성숙한 사회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 제자의 박사학위 지도교수는 Teaching School이나 심지어 포스트닥터로 남을지언정, 절대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한다.
내가 재직하는 서울대학교는 한참 전에 법인화를 했지만, 시행 다시 명분이었던 자율성은 도로 후퇴하는 것 같다. 예산의 자율성이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이사회는 정부관료들이 장악하고 있고, 단과대학이나 교수들의 영리사업도 그리 개방적이지 않다. 단과대학에서 연구/교육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연구에 재투자되지 못하고 간접비라는 명목으로 본부에 들어간다. 물론 그 돈이 캠퍼스 전체를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세상밖으로 나아가 창의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도록 자율성을 제고하기위해 시행한 법인화 아닌가?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못 나가게 바지가랑이 붙들어 모두를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부끄럽지만 바꿔야 하는데, 책임/권한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답이 없다. 나 같은 일개 평교수가 아무리 열받고 떠들어대 봐야 무슨 소용일지 모르겠지만, ...
생각(그리고 그로 인해 제도와 문화)이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자율성 없는 조직은 희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