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브랜드 강의에서 라인 확장에 대한 대목이 나오면 브랜드 구조 조정을 다루게 된다. 이 때 내가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는데, 은사(恩師)이신 서울대 경영대학의 이유재 교수님의 책장 관리다. 지금은 교수님 연구실을 방문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과거 대학원생 시절 조교로 연구실에서 생활하면서 교수님께 삶의 많은 지혜를 얻었는데 책장 관리도 그 중 하나다. 교수님의 연구실은, 엄청난 연구 업적을 쌓으신 대학자(大學者)의 연구실이라기에는 항상 적정한 수준의 도서와 자료로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건 물론 스타일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한다. 새로운 도서가 생기면 기존 자료 중 무엇이 가장 필요없는지를 생각해서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항상 비슷한 양의 자료를 보유하면서도 최신 정보를 유지할 수 있다. 라인 확장을 통해 신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혹시 기존 브랜드 중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서서히 시장에서 퇴출시킬 상품은 없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도 효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사실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대상이 책장뿐이랴! 지금 논의하고 있는 선택 과부하의 문제도, 지식이 많은 전문가적 소비자에게 싫증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많으면서, 지식이 적은 초심자 소비자를 너무 압도하지 않을 정도로 적은, 바로 그 적정한 수준의 개수를 찾는 게임이라 볼 수 있다. 넓게는 삶의 모든 면에서 적정성(適正性: 유교로 치면 중용(中庸) 정도라 하겠다. 예전에 읽다가 중단했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하고 의미로 충만한 삶을 사는 지름길이다. 나는 좋은 삶이란, 여러 개의 공을 저글링하는 곡예사처럼 삶의 다양한 측면을 적정한 수준으로 평형을 맞춰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은 자신의 저서인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도 배워야 하는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 내용이 요즘 현실에도 정확히 맞는지는 아직 나의 공부가 부족하여 잘 판단하지 못하겠으나, 적어도 사랑이라는 것이 그저 자동으로 경험하는 감정 정도로 치부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 주장을 삶에 끌어다 대입해 보면, 삶에서는 ‘균형의 기술(the art of balance)’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적정한 균형, 직장과 가정의 적정한 균형, 생계와 개인적 관심의 적정한 균형,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의 균형 등 다양한 종류의 균형을 찾아가는 훈련을 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내 개인적 상황을 예로 들면, 일 중에서도 연구, 강의, 학생 지도, 봉사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항상 마음을 챙기려고(mindful)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 과거보다는 일에서 건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건강 관리에 시간과 노력이라는 자원을 더 많이 쓰게 되면서 다른 일들을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 ‘비우기’의 지혜가 중요한 지점이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예를 들어, 일을 유지하려면 놀이나 여가와 같은 다른 요소를 줄여야 한다. 균형점을 어떻게 결정할지는 각자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인생의 목적 의식(정체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점은 나만의 기준을 갖는 것이다. 기준이 있으면 의사 결정이 쉬워진다. 줏대 없이, 즉 나의 기준을 망각하고 상황 논리나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매몰되다 보면 그 균형점이 무너진다. 그러면 내 삶도 무너진다. 지금 당장은 별일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시간이 흘러 삶을 되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허망해진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너무 많은 삶의 요소를 고려하면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도리어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린(lean)한 삶, 미니멀(minimal)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ESG 시대에도 딱 맞는 삶의 스타일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김에 한마디 더하면, 우리는 어쩌다 ~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교수가 되고, 임원이 되고,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된다. ‘어쩌다’라는 말은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무엇이 된다는 의미다. 나의 예를 들어 보면, 어쩌다 부모가 된 것 같다. ‘부모 되기의 기술’을 배우지 않고서. 2020년 5월 29일부터 방영된 채널A의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는 소위 오은영 박사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나의 에피소드이지만, 내가 아는 한 대학생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내가 그 때 그래서 힘들었구나. 우리 엄마아빠가 이런 부분은 날 케어해 주지 못해서 그랬구나’ 하고 눈물을 흘려가며 시청한다고도 했다. 나와 내 아내를 포함해 많은 부모들도 프로그램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 부모들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부모 되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자식을 키운 일종의 자기 반성과 후회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럼 아이들의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독자들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솔직히 나는 아직 정확한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올바른’ 방식으로 자식(후세대)을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첫 걸음이니까.
내가 너무 꼰대 같은 소리를 길게 한 듯한 생각이 갑자기 밀려온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꼰대의 소리도 들을 필요가 있다. 타인의 말은, 아예 귀를 닫는 것보다 필요한 부분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해서 들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 개인의 경험에서 얻는 지혜도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참고하면 자신의 인생 방향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예전에 소설을 왜 읽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은 개연성(plausibility), 즉 실제로 현실에 있을 법한 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볼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물론 내가 사는 삶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삶을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들려면 타인의 인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고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니, 누군가(그것이 실존 인물이든 가상 인물이든)의 삶은 곧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책장 관리에서 인생까지 이야기가 흘러왔는데,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다음 질문을 던져 보라.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참고 문헌] Kumar, N. (2003). Kill a brand, keep a customer. Harvard Business Review, 81(12: December), 86-95.
아래 내용은 자율성 중 고객 해방 전략에서 너무 많은 선택지의 문제를 다루면서 쓴 내용이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많은 경우 그 반대 효과가 나타난다.
책 속으로
HBR 아티클의 제목처럼, ‘브랜드는 죽이고 고객은 잡아야 한다(Kill a brand, keep a customer).’[1] 동종 카테고리[2]에서 보유하고 있는 상품 수가 많은지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시금석은 우리의 판매직원이 상품 간 차이를 누군가(유통업체 및 최종 고객)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유통업체가 특정 기업의 상품 간 차별화 포인트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기업의 여러 브랜드를 위해 자신의 매대 공간을 내 줄리 없다. 일종의 휴리스틱[3]으로 다음 10개의 질문을 던져보면 브랜드 수가 너무 많은지, 아니면 브랜드 구조 조정에 돌입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4] 아래 질문에 ‘예’라고 답한 개수가 (1) 0-2라면 구조 조정 필요성 최소, (2) 3-6이라면 상당한 정도의 구조 조정 가능성 존재, (3) 7-10이라면 브랜드 구조 조정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을 의미한다.
[1] [참고 문헌] Kumar, N. (2003). Kill a brand, keep a customer. Harvard Business Review, 81(12: December), 86-95.
[2] 동종 카테고리에서 모브랜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종류의 확장 상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라인 확장(line extensions)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가루형 세제를 액상형으로 출시하거나 포장 사이즈를 다르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상품을 출시하는 경우가 있다. 샴푸의 경우, 다양한 머릿결 상태에 따라 신상품을 출시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3] 휴리스틱이란 일종의 심리적 지름길(mental shortcut)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는 많은 경우 정보를 자세히 처리하지 않고 정보의 일부 조각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가격이 비싸면 품질도 좋을 것이라 추론하는 가격-품질 신념(price-quality belief)도 휴리스틱이다. 여자들은 소위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이라 불리는 이과적 분야에서 남자들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에 근거하여 사람을 판단한다면 그것도 휴리스틱이다. 이는 주로 미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다. 한국에서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편향이 일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휴리스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행동 경제학이나 인지 심리학 관련 도서를 참고하면 된다.
[4] 브랜드 강의에서 라인 확장에 대한 대목이 나오면 브랜드 구조 조정을 다루게 된다. 이 때 내가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는데, 은사(恩師)이신 서울대 경영대학의 이유재 교수님의 책장 관리다. 지금은 교수님 연구실을 방문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과거 대학원생 시절 조교로 연구실에서 생활하면서 교수님께 삶의 많은 지혜를 얻었는데 책장 관리도 그 중 하나다. 교수님의 연구실은, 엄청난 연구 업적을 쌓으신 대학자(大學者)의 연구실이라기에는 항상 적정한 수준의 도서와 자료로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건 물론 스타일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한다. 새로운 도서가 생기면 기존 자료 중 무엇이 가장 필요없는지를 생각해서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항상 비슷한 양의 자료를 보유하면서도 최신 정보를 유지할 수 있다. 라인 확장을 통해 신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혹시 기존 브랜드 중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서서히 시장에서 퇴출시킬 상품은 없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도 효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사실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대상이 책장뿐이랴! 지금 논의하고 있는 선택 과부하의 문제도, 지식이 많은 전문가적 소비자에게 싫증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많으면서, 지식이 적은 초심자 소비자를 너무 압도하지 않을 정도로 적은, 바로 그 적정한 수준의 개수를 찾는 게임이라 볼 수 있다. 넓게는 삶의 모든 면에서 적정성(適正性: 유교로 치면 중용(中庸) 정도라 하겠다. 예전에 읽다가 중단했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하고 의미로 충만한 삶을 사는 지름길이다. 나는 좋은 삶이란, 여러 개의 공을 저글링하는 곡예사처럼 삶의 다양한 측면을 적정한 수준으로 평형을 맞춰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은 자신의 저서인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도 배워야 하는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 내용이 요즘 현실에도 정확히 맞는지는 아직 나의 공부가 부족하여 잘 판단하지 못하겠으나, 적어도 사랑이라는 것이 그저 자동으로 경험하는 감정 정도로 치부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 주장을 삶에 끌어다 대입해 보면, 삶에서는 ‘균형의 기술(the art of balance)’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적정한 균형, 직장과 가정의 적정한 균형, 생계와 개인적 관심의 적정한 균형,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의 균형 등 다양한 종류의 균형을 찾아가는 훈련을 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내 개인적 상황을 예로 들면, 일 중에서도 연구, 강의, 학생 지도, 봉사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항상 마음을 챙기려고(mindful)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 과거보다는 일에서 건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건강 관리에 시간과 노력이라는 자원을 더 많이 쓰게 되면서 다른 일들을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 ‘비우기’의 지혜가 중요한 지점이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예를 들어, 일을 유지하려면 놀이나 여가와 같은 다른 요소를 줄여야 한다. 균형점을 어떻게 결정할지는 각자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인생의 목적 의식(정체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점은 나만의 기준을 갖는 것이다. 기준이 있으면 의사 결정이 쉬워진다. 줏대 없이, 즉 나의 기준을 망각하고 상황 논리나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매몰되다 보면 그 균형점이 무너진다. 그러면 내 삶도 무너진다. 지금 당장은 별일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시간이 흘러 삶을 되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허망해진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너무 많은 삶의 요소를 고려하면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도리어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린(lean)한 삶, 미니멀(minimal)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ESG 시대에도 딱 맞는 삶의 스타일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김에 한마디 더하면, 우리는 어쩌다 ~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교수가 되고, 임원이 되고,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된다. ‘어쩌다’라는 말은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무엇이 된다는 의미다. 나의 예를 들어 보면, 어쩌다 부모가 된 것 같다. ‘부모 되기의 기술’을 배우지 않고서. 2020년 5월 29일부터 방영된 채널A의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는 소위 오은영 박사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나의 에피소드이지만, 내가 아는 한 대학생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내가 그 때 그래서 힘들었구나. 우리 엄마아빠가 이런 부분은 날 케어해 주지 못해서 그랬구나’ 하고 눈물을 흘려가며 시청한다고도 했다. 나와 내 아내를 포함해 많은 부모들도 프로그램을 보면 눈물을 흘린다. 부모들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부모 되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자식을 키운 일종의 자기 반성과 후회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럼 아이들의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독자들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솔직히 나는 아직 정확한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올바른’ 방식으로 자식(후세대)을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첫 걸음이니까.
내가 너무 꼰대 같은 소리를 길게 한 듯한 생각이 갑자기 밀려온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꼰대의 소리도 들을 필요가 있다. 타인의 말은, 아예 귀를 닫는 것보다 필요한 부분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해서 들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 개인의 경험에서 얻는 지혜도 중요하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참고하면 자신의 인생 방향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예전에 소설을 왜 읽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은 개연성(plausibility), 즉 실제로 현실에 있을 법한 스토리를 통해 다양한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볼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물론 내가 사는 삶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삶을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만들려면 타인의 인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고 역사란 돌고 도는 것이니, 누군가(그것이 실존 인물이든 가상 인물이든)의 삶은 곧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책장 관리에서 인생까지 이야기가 흘러왔는데,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다음 질문을 던져 보라.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참고 문헌] Kumar, N. (2003). Kill a brand, keep a customer. Harvard Business Review, 81(12: December), 86-95.